사회의 민주화와 대학의 민주화
1987~1997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억압과 강제 해직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대학자율화와 사회비판 운동을 통해 굳게 유지해온 우리 지식인 운동의 정신은 1987년 민주대장정 속에 꽃피게 된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공안정국과 4·13 호헌조치에 대해 전국의 교수들은 대학별로 시국선언을 발표했으며 모두 48개 대학에서 1천513명이 이에 참여하였다. 그러한 분노와 의기를 모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라는 거대한 물줄기에 몸으로 따라 합류하면서 원로 및 중진교수와 30, 40대의 소장교수들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출범 이후 민교협은 전두환 정권의 기만적인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 선언 이후 각 분야에서 터져 오른 민주화의 봇물을 변혁지향 민중운동이라는 큰 물줄기로 이끌어 가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시민사회 운동은 물론 노동, 빈민 등 민중 운동을 포함한 모든 사회 운동에 지식인 운동 단체로서 큰 영향을 미쳐왔고, 민주화와 변혁의 흐름을 주도해 나갔다.

민주주의의 퇴행과 민교협2008~2017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보수 퇴행의 시기에 민중의 삶은 다시 피폐해졌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개방을 합의하였으며 이는 전국민적인 저항을 불러오게 된다. 민교협은 교수단체들과 함께 전국 교수 서명운동을 전개 총 1008명이 서명한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가 자행하는 언론장악, 집시법 개악 등 반민주적, 반민중적 행태에 저항하는 활동을 전개해 왔다. 2009년 용산 참사 직후 진보 시민단체와 함께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구성,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등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함과 동시에 도시재개발과 도시빈민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해결방안을 민중과의 연대를 통해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국토를 황폐화하는 4대강 사업의 허구성을 설파하고 이를 저지하는 운동을 환경운동의 차원을 넘어 정치운동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 강행에 직면해 범국민운동본부에 적극 결합해 전문 지식인 단체로서 반대 논리를 형성하는 담론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진보적 대안을 사회적 담론화하고 정책으로 생산해내는 지식인 단체로서 본연의 기능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이명박 정부를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는 시작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 등 부정 선거 의혹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에 민교협은 선거 직후부터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했으며 이후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불통을 비판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구조 실패, 진상규명 훼방 등은 ’이게 나라냐’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무능과 불통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민교협은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각종 연대운동을 전개하면서 박근혜 정부 하에서 가속화되고 있던 민주주의의 퇴행을 저지하고자 노력했다. 아울러 신자유주의 체제의 공고화에 따른 의료 및 교육 등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노동 유연화, 비정규직 확대, 쌍용차 사태로 대변되는 노동 탄압에 맞서 민중과 연대하고 투쟁을 지원해 왔다. 비리사학 문제와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그리고 이에 따른 학문 생태계의 붕괴를 막기위한 활동을 지속함과 동시에, 국정교과서 문제나 위안부 협상 등 박근혜 정부의 반민주적 실정에 대응해 그 부당성을 알리는 데 노력해 왔으며, 마침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분노한 시민들과 함께 전국의 교수연구자들을 조직해 촛불 혁명에 참여, 새로운 민주평등 공공성의 민주공화국의 개혁 의제들을 제시하게 되었다.